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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과 입체를 아울러, 김아라의 작업에서 세로선(수직)과 가로선(수평)은 형식적 특징이다. 예를 들어, <Set #1>(2015)처럼 직선이 교차하고 결합한 입체 작업, <Vertical Line>(2022)처럼 프레임(frame)을 전시 공간에 설치한 작업, 그리고 <Untitled-Connection #1>(2019)처럼 한 평면 안에 여러 개 화면이 공존하는 작업에서, 세로선과 가로선을 찾을 수 있다. 선과 선이 만나 면을 이루는 것처럼, 평면과 입체를 넘나드는 시도는 선과 면에 기반한 건축적 결과물로 탄생한다. 김아라의 작업에서 세로선과 가로선은 예술의 기본적 조형 언어인 동시에 그가 관심을 두게 된 고궁의 공포(栱包)[1]나 단청에 그려진 문양이라는 구체적인 대상에도 찾을 수 있다. 하늘과 땅을 잇는 매듭 역할을 하는 공포에 주목하여 작업한 <Set #1>에서 김아라에게 세로선과 가로선은 어떤 것이었을까. 밑에서 위로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제작된 이 작업은 공포를 시각적으로로 모방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말하자면, 땅과 하늘을 잇는 건축적인 특성과 근본을 사실상 공유하고 있다. 더 나아가, 예술이라는 영위를 통해서 건축이라는 분야에 인위와 자연이 만나는 접점을 들여다본다고도 할 수 있다.

 

여기서 김아라의 경험—그가 고궁을 방문하던 시절, 건축 외부에서 내부를 봤던 일화—을 언급하고 싶다. 심리적으로 힘든 시기에, 그는 고궁을 종종 방문했다. 건축물 외부에서 내부를 살짝 들여다보던 경험은 그에게 어떤 것이었을까. 아파트나 서양식 주거 환경에 익숙한 삶에서 내부 공간을 엿보는 경험을 통해 작가는 심리적 위안을 받았다. 김아라에게 세로선과 가로선의 교차는 표현 면의 관심뿐만 아니라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여 시선을 공유한 결과이다. <Set #1>에서 출발하여 <Coexisting Image #1>(2019), 그리고 <Untitled-Connection #1>에 이르기까지, 김아라의 작품은 전통과 현대가 만나서 형성된 매듭과 과거와 지금이 연결되어 있음을 풀어서 보여주는 것이다. 선과 시간축의 만남과 교차는 외부에서 내부를 살짝 본, 바로 틈새이자 슬릿(slit)의 시선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틈새와 슬릿은 어떤 곳과 어떤 곳 사이에 걸친 중간 지대이다. 이 중간 지대에서의 만남은 하늘과 땅을 잇던 공포의 속성을 공유한다. 지붕과 기둥을 잇는, 분리되지 않는 접점인 공포의 중간자적 특성은 하늘과 땅을 잇는 동시에 현재와 과거를 잇는다[2].

 

초기 작업에서 출발하여 김아라의 작업은 프레임에 프레임이 반복되어 들어가는, 동시대 회화의 매체에 대한 관심으로 발전되었다. 일련의 <Window>(2021-2022) 작업에서 프레임은 어떤 구역을 한정 짓는 대신 반복을 통해서 안과 밖의 경계를 유연하게 만든다.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가 말했던 코라(Khoa), 즉 장(場)의 개념에 비추어서 말한다면, 프레임의 외연을 확장해 가는 표현 방식에는 ‘확장된’—개념적으로도 물성적으로도—회화를 향한 작가의 관심이 보인다. 한옥의 창문 구조에 착안한 이 시리즈에서 화면은 액자가 되기도 내용이 되기도 한다. 둘의 관계가 미끄러지는 지점을 내포할 때, 그의 회화는 원근법적인 창문과 다른 속성을 지니게 된다. 김아라의 <Window>는 소실점을 향해 뻗어나가고 수렴되는 시각장이 아닌, 외부-내부와 과거-현재가 한 화면 안에 여러 개 쌓여 중첩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창문의 현대적 해석은, 전통적 소재를 가져왔다는 사실로만 설명되어서는 안 된다. 작가의 일화 못지않게 기술적 변화를 통해 바라본 회화-창문의 동시대적 해석이 가능하다. 화면에 나타나는 또 다른 작은 단위의 화면은 소프트웨어나 컴퓨터 프로그램의 시공간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Untitled>(2023)을 보면, 화면 안에 색과 크기, 그리고 길이와 비율이 다른 작은 화면이 여러 개 있다. 한옥의 건축적 구조 또는 책가도를 연상시키는 이 작업에서, 화면은 각각 다른 시공간에 놓여 있다. 그렇게 봤을 때, 김아라의 작업은 뿌리를 내린 전통보다도 중간 지대에서 바라보고 과거와 현재를 겹쳐 본 결과물에 더 가깝다. 재구성된 전통이란 단청의 문양이나 공포의 형태를 가지고 와서 변형시켰다는 의미보다도, 이를 다시 컴퓨터 프로그램 화면 위에서 이미지 자료를 올려 재조합하듯이 화면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고 층에 대한 관심이 모두 소프트웨어로 귀결되는 것도 아니다. <Window>에 사용된 린넨 천의 일부를 그대로 노출할 때, 재현에 의한 환영적 깊이 대신 물리적 공간감이 생긴다. 동명의 개인전 《Window》(소양고택, 2022)에서 설치된 곳은 채광이 들어오는 전시장이었다. 빛의 각도나 날씨에 따라 달리 보이는 작업에서, 작가는 인위와 자연 사이에 서서 예술을 고민한다. 말하자면, 김아라의 작업에서 인위의 산물인 작품과 자연의 산물인 날씨의 관계는, 땅 위에 집을 짓는 건축적인 태도를 회화 형식으로 풀어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1] 목조 건축에서 수평과 수직이 결구되었을 때 상부의 지붕을 지지하는 구조물을 말한다

[2] 유추하건대, 안-밖, 과거-현재, 하늘-지상이 만나는 중간 지대에서의 경험은 아버지를 먼저 보낸 김아라에게 치유의 공간이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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